구의 누이들을 총으로 쐈던 형 요한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사건을 보여주는 소설의 시점도 다양하다.일인칭 삼인칭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등장 인물 각자의 시점에 따라 서로를 교차하며 그려진다.그러다보니 이 작품에선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이 동시에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등장하고 그들의 회상과 이야기도 제각각이다. 원적이 ‘황해도 신천군 온천면 온정리 103번지’인 작가는 89년 북한을 방문했을 때 이 작품의 배경이 된 ‘미제 양민학살 기념관’에 갔었다.당시 안내원은 “북진한 미군이 전 군민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만5000명을 학살했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치를 떨었다. 그러나 그가 나중에 베를린으로 돌아와 알아본 결과 그 이면에는 더 큰 비극이 있었다.신천 사건은 빈농층이 대부분이었던 그곳의 ‘사회주의자들’과 관리직에 있던 ‘기독교들’사이에서 벌어졌던 우리끼리의 살육이었던 것이다.당시 열정이 넘치는 젊은 사회주의자들은 기독교로 대표된 민족 부르주아지들의 저항에 부딪혀 자주 ......
손님 감상문
[손님]은 한국전쟁시기 서로 죽고 죽이던 저러한 악몽의 45일을 몽환적으로 드러내는 한판의 해원굿입니다. 천연두의 민속적 별명이기도 한 `손님`이라는 황석영의 소설을 읽고 쓴 글입니다. 손님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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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독특한 리얼리즘 제시 “그날의 살육, 50년과제 털어”
작가 황석영(58)이 신작 장편 『손님』(창작과비평사)을 펴냈다.방북과 해외체류,5년간의 복역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오래된 정원』으로 문단에 복귀한 지 1년만이다.
이 소설은 감상적인 문체로 눈물샘을 자극하거나 현 세태를 반영하는 가벼운 소설의 홍수 속에 오랜만에 만나는 굵직한 작품이다.그동안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의 양민학살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는데다가 그만의 독특한 리얼리즘을 추구한 실험정신이 뚜렷한 작품이다.
『손님』은 미국 브루클린에 살고 있는 류요섭 목사가 방북 사흘전 숨을 거둔 형 류요한 장로의 뼛조각을 품에 넣고 고향 방문단의 일행으로 북한을 찾는 이야기.류목사의 방북길에 망자가 된 형의 ‘헛것’이 나타나 그와 하나가 됐다 둘이 됐다를 반복하면서 50여년 전 과거의 아득한 기억으로 그를 불러 들인다.
류목사는 자신의 고향이자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자행된 양민학살사건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존된 신천을 방문한다.다른 일행들이 모두 가족을 만나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도 그는 지도원이 캐물을 때까지 형수와 조카들의 이름을 대지 못한다.당시 기독청년이던 형과 연관된,1950년 인천상륙 이후의 끔찍했던 45일간의 기억이 그를 몸서리치게 만들기 때문이다.같은 마을에 살던 이찌로 아저씨,두더지 삼촌,친구의 누이들을 총으로 쐈던 형 요한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사건을 보여주는 소설의 시점도 다양하다.일인칭 삼인칭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등장 인물 각자의 시점에 따라 서로를 교차하며 그려진다.그러다보니 이 작품에선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이 동시에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등장하고 그들의 회상과 이야기도 제각각이다.
원적이 ‘황해도 신천군 온천면 온정리 103번지’인 작가는 89년 북한을 방문했을 때 이 작품의 배경이 된 ‘미제 양민학살 기념관’에 갔었다.당시 안내원은 “북진한 미군이 전 군민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만5000명을 학살했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치를 떨었다.
그러나 그가 나중에 베를린으로 돌아와 알아본 결과 그 이면에는 더 큰 비극이 있었다.신천 사건은 빈농층이 대부분이었던 그곳의 ‘사회주의자들’과 관리직에 있던 ‘기독교들’사이에서 벌어졌던 우리끼리의 살육이었던 것이다.당시 열정이 넘치는 젊은 사회주의자들은 기독교로 대표된 민족 부르주아지들의 저항에 부딪혀 자주 충돌했다.미군의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북한군이 후퇴하자 숨을 죽이던 기독교도들이 들고 일어섰고,정규군끼리 전황에 따라 날을 바꿔가며 서로를 도륙했던 것.
천연두를 ‘손님’이라고 부른데서 따온 이 장편의 제목을 통해 작가는 당시의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를 모두 ‘손님’으로 규정했다.그런데 한국전쟁 50주년이 지난 지금,“이제보니 사실상 가장 무서운 손님인 ‘마마님’은 아직도 미국”이란다.
작가는 “이 작품은 내가 베를린에 체류했던 시절,사실상 세계적인 냉전해체의 시작이었던 장벽붕괴를 목격하면서 진작부터 구상했던 것”이라며 “주인공 류목사는 뉴욕에서 만났던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것으로 그에게서 전쟁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신천 사건이 실은 ‘우리들끼리’ 자행된 일이라 남과 북,모두가 싫어할 내용이라는 생각에 글쓰는데 애를 먹었다”며 “이제야 비로소 해묵은 과제를 털어냈다”며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할 말을 어느 정도 했기 때문일까.작가는 당분간 영화제작과 시민방송사업에 몰두할 계획이다.
--- 국민일보 01/6/5 한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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